그동안 결제해놓기만 하고 방치해둔 도메인과 웹호스팅이 아까워서 다시 블로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운영자의 입장에서 블로그는 그렇게 관리하기 쉬운 대상은 아니다. 투입의 노력은 차치하고 일단 보상의 측면을 보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도 올리고 잘 가꾼다고 해서 당장 돌아오는 것은 없다. 예전엔 광고를 달아서 수익을 내는 블로거들도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광고로 돈을 버는게 어려워진다고들 하더라. 아주아주 유명한 파워블로거가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블로거들에게 광고로 유의미한 액수의 돈을 버는 건 딴 세상 이야기일 것이다.
블로깅의 또 다른 재미는 상호작용이다. 느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만의 공간에 자유롭게 펼치고 그 이야기를 읽은 익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다는 것, 즉 상호작용 그 자체가 큰 쾌감이 된다.
그런데 나도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적극적인 반응에 인색하다. 좋은 글이 올라오고 조회수가 올라가도 댓글은 보기 쉽지 않다. 물론, 사람들이 갑자기 차가워진 것은 아니다. 반응은 장소를 옮겨갔을 뿐이다.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그리고 트위터로. 유령을 상대로 블로깅을 하던 사람들도 반응이 고파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블로그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또 사람들은 블로그에 광고쟁이와 파워블로거지만 남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런데 이 마당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블로그를 해야할까? 그 시간에 잠이라도 자는게 낫지 않을까?
1. 기록하는만큼 행복하다
내 생각은 아니고, 자주 가는 어떤 개인 홈페이지에서 본건데 논리의 비약처럼 보이지만 공감이 갔다. 사람은 기억하는 만큼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은 기록하는 만큼 기억할 수 있다 뭐 이런거다. 쉽게 이야기해서 추억이 밥먹여 주는데(!) 추억은 의외로 금방 휘발되니 자주 기록하자는 것이다. 자랑이던 기억력이 점점 약해지다보니 기록을 남겨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주 강하게 든다. 좋았던 일이나 여행, 재밌게 읽은 책과 감명 깊게 본 영화들에 대한 감상들을 짧게라도 남기고 싶다.
2. 생각의 정리
트위터에서 유명한 트레이더이자 저자 김동조님이 그랬다. 자신의 영업 비밀은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것이라고. 그분이 영업 비밀을 그냥 막 공개한 이유는? 영업 비밀이란게 특별한게 아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분이 직접 밝힌 이유는 “밝혀도 어차피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탕 치는 이야기였는데, 김동조님처럼은 못해도 가끔 이어지는 생각들을 날려버리지 말고 조금 더 발전시켜서 끄적거리고 남겨두면 먼 훗날 도움이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든다. 언젠간 이 점들이 서로 연결될지도 모른다.
3. 호기심의 추적
나는 호기심이 많다. 타고난 제네럴리스트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호기심의 대상이 광범위하다보니 관심과 노력이 허무하게 흩뿌려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도대체 누구지? 내가 진짜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뭐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호기심의 대상이 생길때마다 그 대상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가보기로 했다. 읽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글을 쓰고.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리듯, 이렇게 점을 계속 찍다보면 어느순간 내 윤곽이 뚜렷해지고 진심이 좇는 대상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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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것들은 페이스북에도, 인스타그램에도 그리고 트위터에도 남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소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들은 관계(네트워크)와 컨텐츠의 피딩에 집중하고 있어서 컨텐츠의 휘발성이 아주 강하다. 이런 플랫폼에서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기억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찾아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블로그는 느리고 무겁고 끈끈하다. 기억의 저장소로 제격이다.
내가 생각하는 블로그의 가치는 내 자신과의 대화에 있다. 이 블로깅은 굳이 나 이외의 청자를 기대하지 않는 글쓰기다. 돈이 안돼도, 댓글이 안달려도 행복한 블로깅. 사실 모든 글쓰기는 이런 동기에서 시작하는게 아닌가. 김동조 님이 이야기했듯 “자신이 쓴 글의 가장 열렬한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아 물론, 널리 읽히고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박도도
wordpress수업받는 박도도입니다. 이런 선구적인.. 대단하시네요
hongjiho
아니 도도님이 여길 방문하시다니 ㅎㅎ 나름 선구적이었으나 글을 거의 쓰지 않아서 의미를 잃었…
김상태
들을만한 강의 추천좀 ㅋ
hongjiho
응? 어떤 강의? 워드프레스 만드는 강의말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