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씨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영화평론가. 그가 조선일보 기자이던 시절부터 지켜봐 왔는데, 바다처럼 넓고 깊은 지식의 비밀이 늘 궁금했다.
김봉진씨는 음식 배달 주문 서비스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을 창업한 잘 나가는 CEO. TV에 출연해서 운영했던 회사가 어려워져 거의 망했을때,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쳐 재기했다며 독서가 지금의 <배달의 민족>이 있게 만든 힘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두 명의 ‘진’자 돌림 이름을 가진 시대의 스타들이 책 읽기가 저물어 간다는 시대에 책 읽기에 대한 책을 냈다.
# 이동진의 책 읽기
먼저 이동진씨의 책 읽기. 책과 독서에 대한 욕심과 애정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책을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전업 영화평론 전문 기자였고 명성을 얻은 것도 영화평론이었기 때문에 의외였다.
이동진씨가 밝히는 독서 철학은 다소 허무하지만 책의 부제에 나와 있는대로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그간 그가 구축해온 명성과 이미지로 미루어볼 때 나름의 체계적이고 고상한(?) 독서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재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는 독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독서에 불과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독서는 언젠가 지치는 시점이 올 수밖에 없다. 결국 재미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독서가 된다는 것.
나는 독서는 일종의 유희적 ‘학습’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독서는 마땅히 ‘학습’에 필요한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재미가 없어도 중력을 거슬러 산에 오르듯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읽어야 하는건 당연하고, 생각과 지식의 균형을 위해 딱히 관심없는 분야여도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독서의 단점은 분명했다. 나의 독서는 가끔 힘겨웠고 때론 무미건조했다. 빨리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만을 바랄 때도 있었다.
이동진씨는 재미를, 재미만을 추구해서 마음 닿는대로 갈 지(之) 자로 읽어나가도 의미있고 보람찬 독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미없는 독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재미없는 책은 덮어라.
물론 이런 생각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그의 책과 독서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재미와 나의 재미는 질적으로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동안 독서에 대해 가졌던 엄숙주의를 내려놓고 순수히 재미만을 좇는 독서를 시도해볼 용기를 준다.
1부에는 책과 독서에 대해서 많은 독서가들이 가졌을 법한 ‘의문’들에 대해 답하는 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나 또한 타인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들이어서 반가웠고 독서 생활에 대한 힌트도 많이 얻었다. 이 의문들만 나열해도 이동진씨의 책과 독서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 실패한 독서가
- 그런데 왜 책을 읽으세요?
- 넓이의 독서
- 문학을 왜 꼭 읽어야 하나요?
- 꼭 완독해야 하나요?
-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 지금 가까이에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
- 느리게 읽어도 상관없다
-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 한 번에 열 권 읽기
- 책을 고르는 세가지 방법
2부에는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책, 글쓰기, 영화에 대해서 나눈 대화를 옮긴 형식의 글이 실려있다. 이동진씨가 독서에 탐닉했던 어린시절과 개인적인 사생활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 김봉진의 책 읽기
두 책을 연달아 읽을때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정리하고자 놓고 보니 김봉진씨의 책은 제목부터 그의 독서가 목적 지향적임을 드러낸다. 책의 구성도 그러하다. 1장은 ‘책 잘 아는 법’이고 2장은 ‘책 잘 읽는 법’, 3장은 ‘책 잘 써먹는 법’이다.
이동진씨는 책과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성향인 반면 김봉진씨에게 독서는 수단적이다. 이동진씨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책 읽기에 대한 습관을 키워왔다면 김봉진씨는 인생의 중반부쯤 각성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다.
김봉진씨가 풀어놓는 노하우나 팁들은 집중적, 의도적으로 책 읽기에 매진해온 시간의 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생활에 도움이 되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1년 선배보다 10년차 실용서가 낫다”는 조언이 참신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솔직하고 유연한 태도도 주목할만한 했다. 책을 읽는게 목적이 아니라 책에 담겨있는 생각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므로, 읽고 있는 책이 어렵다면 그보다 쉬운 책을 찾아서 읽고, 그래도 어렵다면 중고생을 대상으로 쓰여진 만화책을 보거나 관련된 포털 비디오클립을 보는 것도 좋다고 권장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잘 없다.
이동진씨의 책이 전교 1등이 하는 이야기 같다면 김봉진씨의 책은 노력파 우등생 이야기 같다. 그래도 두 책이 비슷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고수끼리는 통해서일수도 있고 어떤 공통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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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 모두 마지막에 추천도서 목록을 실어놓았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관심은 많아서 주말 신문의 서평은 거의 항상 읽으려는 편이고, 서점에 들러 어떤 책들이 유행이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를 확인하는 걸 좋아한다. 그럼에도 제목조차 낯선 책들이 많았다. 추천도서들이 좋은 책들이겠거니 하면서도 이 책들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역시 남이 좋다고 추천하는 책과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다른 법이다.
두 책이 모두 쉽고 가볍게 쓰여 있어 ‘무슨 이런 장난 같은 글을 책으로 만들어 파느냐’ 라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얇고 여백이 많긴 하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에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다면 분명 이 책들에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